독일미학(3) – 미를 위한 미, 칸트

임마누엘 칸트

임마누엘 칸트(1724-1804) 근대 철학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데카르트로부터 이어지는 합리(이성)론와 로크로부터 이어지는 경험론을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저술은 엄밀하고 방대한 편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부분적으로 미학 사상에 한정하여 살펴볼 것이다.

칸트의 미학도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미학을 위한 논의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구성하기 위한 한 요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칸트의 미학적 논의가 지니는 가치는 ‘미’를 완전히 주관주의적 요소로 정립했다는 점에 있다.

멘델스죤과 같은 1세대 취미론자들은 미적 감정에 주목하지만, 기존의 철학적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대상의 객관적 속성으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칸트에 이르러 미적 기준이 완전히 주관적 감정에 근거를 두는, 즉 주관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경향을 바탕으로 그의 미학적 논의가 드러나는 『판단력비판』의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판단력비판』 간단히 살펴보기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자신의 미학을 전개하고 있지만, 사실 주요한 논의는 미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뉴턴의 물리학과 같은 과학적, 기계론적, 필연적 세계관을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했다면,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자유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두 작업의 결과인 필연적 자연과 자유, 칸트는 『판단력비판』을 통해 상충하는 이 둘을 매개하여 조화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매개는 합목적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합목적성은 어떤 개별적인 현상이 목적(전체, 형식)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합목적성을 쉽게 이야기하자면, 예를 들어 인간의 팔, 다리 등 신체기관은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에 필수적이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체의 개별적인 요소들은 인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합목적성을 가진다.

칸트는 합목적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주관적 합목적성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 합목적성이다.

주관적 합목적성은 칸트의 미학에 해당되는 부분이며, 객관적 합목적성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유기체, 생물학적, 목적론적 세계관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간략한 소개를 통해 『판단력비판』이 단순한 미학서적이 아닌 점을 짚어보았고, 이후의 내용은 칸트의 미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

칸트는 판단을 규정적 판단반성적 판단을 구분하는데, 규정적 판단이란 ‘S is P’와 같은 형태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부분 사용하는 판단이다. 판단의 목적은 불명료한 것을 명료하게 함에 있다.

예를 들어, ‘사과는 과일이다.’라는 판단에서 주어는 특수한(개별적)대상을 의미하며, 술어는 보편적 개념을 의미한다.

즉 규정적 판단은 특수한 대상(‘S’, 주어)을 보편적인 개념(‘P’, 술어)에 포섭하여 명료하게 사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을 두고 ‘이것(S)은(is) 아름답다(P).’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름답다(P)’라는 술어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 개념이 주어지지 않는다.

반성적 판단은 보편적인 개념, 즉 술어가 규정적 판단의 경우와 같이 명확하지 않을 때, 이것이 가능한 원리 혹은 근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적 판단은 일종의 주관적 쾌감 내지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개념에 의해 규정될 수 없다.

그러므로 미적 판단은 규정적 판단이 아닌 반성적 판단이다.

이 때, 반성적 판단에 있어 반성의 대상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인간의 형식 또는 구조이다.

다음 단락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미적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미적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쉽게 말해, 자연이 왜 아름다운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관심적 쾌감과 순수성으로서의 미적 감정

칸트는 앞선 글에서 소개한 영국 취미론자와 멘델스죤의 무관심적 쾌감(disinterested pleasure)에 대한 주장을 수용하여 무관심성의 의미를 구체화한다.

무관심성이란 대상에 일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으로서 대상의 현존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전제하지 않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대상에 대한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현존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미적 기준이 외적인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적 체험의 대상은 인식 대상으로 접근하여 규명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꽃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자체에는 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와 같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즉, 그 순간 자체에는 순수한 자세로 꽃을 대상화하거나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후에 그 꽃에 대해 소유하려거나 어떤 판단을 내리려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적 체험이 아니게 되며, 대상의 현존, 실용적 관심, 욕망 충족의 수단이 된다.

결과적으로 미적 감정 내지 미적 체험은 대상에 대한 일체의 관심이 없는 상태이며 어떠한 이기적인 욕구 혹은 편견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순수한 상태이다.

이러한 무관심성, 순수성으로서의 미적 감정은 개인의 일상적 이해관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상호주관적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이후에 다룰 숭고미는 도덕성과도 관련이 깊다.

미적판단의 선험성과 보편성

처음 단락에서 밝혔듯이,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연장선 상에서 미적 판단의 근거와 구조를 밝히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맥락에서 미적판단의 선험성과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적판단이 단순히 개인의 주관적이고 우연적인 체험에 지나지 않게 된다면, 이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칸트는 미적판단의 선험성과 보편성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은 미적판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철학의 전반적인 성격을 고려해야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비판은 초월론적 작업으로서, 미적판단이 주관적인 감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이러한 기초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를 밝혀내는 탐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칸트는 미를 느끼는 객관적 원리는 존재하지 않지만, 미적판단에서 특정한 형식이 있음을 밝혀낸다.

더불어 이러한 형식은 모든 인간이 보편적 내지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미적 감정의 발생은 내용과는 무관하게 대상의 형식과 인식의 형식이 합치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합치는 형식 간의 합목적성을 드러내며, 결과적으로 칸트는 형식을 밝혀내는 작업을 통해 미적 판단이 단순히 우연적인 판단이 아니라 보편적 형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상호주관성 내지 보편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상상력과 지성

그렇다면 미적판단이 어떠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칸트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식의 과정이 다음과 같다고 밝혔다.

감성의 두 직관 (공간/시간)에서의 잡다 -> 상상력의 매개 -> 지성의 12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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