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학(1) – 미학의 출발, 바움가르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1714-1762)은 자신의 저서 『감성학』(오늘날 미학에 해당되며, 당대에는 aesthetica-저급한 인식의 학)을 통해 미적 인식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였다.

이전까지는 미적, 감성적 인식에 대한 논의가 부재했는데, 이는 당대 철학의 합리주의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후술할 것이다.

바움가르텐의 사상적 배경

바움가르텐은 라이프니츠-볼프 학파를 계승하였다. 볼프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체계화하였고 이를 대학에서 지도하였는데, 바움가르텐은 그 중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었다.

바움가르텐은 라이프니츠의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적 측면의 영향을 받으므로 우선 합리주의와 라이프니츠의 인식관을 살펴볼 것이다.

합리주의

기존의 합리주의적 전통은 오직 이성적인 인식만 의미를 지니고, 감성적 인식은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합리주의와 대비되는 경험론은 경험과 같은 감성적 인식만이 인식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합리주의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이어져온 합리주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근대 합리론자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이성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과 차원이 다르고 고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이 본유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본유관념이란 수학과 같이 경험을 통하지 않고도 인식할 수 있는, 경험에 앞서는 관념이라는 점에서 선험적인 성질을 가진다. 더불어 이들은 신과 영혼이 본유관념의 성질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근대의 합리론자를 대표하는 데카르트는 감성적 인식이 오류의 원천이기 때문에 배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즉, 참된 인식은 이성적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감성적 인식은 오히려 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바움가르텐도 마찬가지로 근대 합리주의적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 인식이 우위에 있음을 정당화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감성적 인식의 가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진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도 세계를 이성적이고 수학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데카르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형이상학적인 논의에서 차이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데카르트는 세계를 운동의 관점으로 보았으나 라이프니츠는 힘의 관점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우선 미학적 논의에 있어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형이상학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지각이다.

라이프니츠는 이성적 인식을 포함한 모든 인식이 지각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고 하는데 지각은 굉장히 많은 단계가 있고 정도의 차이를 지닌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핵심 주장이다.

이러한 점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를 통해 드러나는데, 모나드는 물질이 아닌 영혼, 정신과 같은 것으로서 세계의 실체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무수하고 개별적인 모나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나드가 지닌 것은 힘이고 모나드의 기능은 지각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만물은 물질적 원자가 아니라 정신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이는 감각주의, 뉴턴과 같은 기계론적 원자론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명료하게 지각할수록 참된 인식이 가능하며 신을 명석판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정신적인 단계인 높은 단계의 인식 상태이다.

반면 모나드를 불명료하게 지각하게 되면, 모나드는 잠들어 있으며 의식이 되지 않는 상태이며 이는 물질적인 단계도 포함되는 낮은 단계의 인식 상태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무의식과 같은 지각이 거의 되지 않는 영역도 명료하지는 않지만 지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통한 명확한 합리적 통찰만이 참된 것이라 주장했는데,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인식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렇지만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모두 이성적 인식이 고도의 단계이며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바움가르텐의 인식론

바움가르텐은 라이프니츠의 인식론을 계승하여 확장시킨다. 라이프니츠는 모호한 인식명석한 인식을 구별한다.

모호한 인식

모호한 인식은 불명료해서 개념화와 대상화가 가능하지 않은 인식이다. 이는 미세 지각의 형태로 인식되는데 인식하기에는 너무 작거나 약하고 너무 많거나 유사해서 엄밀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을 지칭한다.

인간은 항상 미세지각을 하고 있고, 인간의 고도한 지각도 미세지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세지각은 의식되지 않은 지각을 지칭한다.

우리가 어떠한 것에 집중을 하면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만, 의식적으로 들을 수 없게 되는 것도 미세지각이다.

또한 파도소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파도의 소리를 이루는 것은 물방울이 모여서 나타내는 것이지만 구성요소를 명확하게 밝히기 힘들다.

즉, 모호한 인식은 의식적으로 명료하게 인식할 수는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명석한 인식

반면 명석한 인식은 대상의 모든 특징들을 구별하며, 완전하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인식을 의미한다. 합리주의적 전통에서 명석(clear)하고 판명한(distinct) 인식은 참된 인식을 의미한다.

데카르트는 인식의 최고 단계가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만이 참된 인식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본유 관념에 대한 인식 역시 동일하다고 보았다.

명석하다는 것은 데카르트의 정의에 의하면 ‘주유하는 정신의 현전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판명한 인식은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동일하며 다른 것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명증성이 진리의 기준이며, 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들의 진리 주장의 근거가 된다.

또한 판명한 인식은 충전적 인식과 불충전적 인식, 직관적 인식과 상징적 인식으로 나뉜다. 신을 인식하는 것은 충전적 인식이며, 고스란히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을 인식하는 것은 상징을 통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인간의 인식은 완벽하지 않기에 불충전적 인식, 상징적 인식이라는 특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명석하지만 혼연한 인식

바움가르텐은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에 대해서 그대로 수용하나 그에게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명석하지만 혼연한 인식이다.

명석하지만 혼연한 인식미적 인식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는 예술 작품에서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근거해서 좋고 나쁨을 명료하게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내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판명하지는 않지만 명석하게 미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연한 인식은 대략적으로 대상의 특징은 보이는데 그렇다고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세지각과 유사하다.

이는 합리적인 관점에서는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인식은 아니지만, 하나의 인식으로 간주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불충전적, 상징적 인식과 같이 미적 인식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데, 신은 완벽하기에 감성이 존재하지 않고 완벽하기 때문에 미적 인식은 인간만 가능하다.

다르게 말해서 혼연한 인식은 인간의 결핍과 부정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인식의 한 특성이며 오히려 어떤 대상의 복합성과 생동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미적 인식이 저급한 차원의 인식임과 동시에 예술에 대한 이론이라는 두 측면을 지닌다.

미적 진리

바움가르텐은 이성적 인식뿐만이 아니라 미적 인식까지도 포괄하여 인식의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합리주의적 체계를 보완하였다.

바움가르텐은 모호한 사유와 판명한 사유는 서로 단절되어 있으며 모호함에서 판명함으로 질적인 도약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고 감성적, 미적 인식만이 이를 매개해준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바움가르텐은 감성적 인식이 이성적 인식에 기여하므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미학이 논리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미적 인식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으며 감성적, 미적 인식 자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확보된다.

이성을 바탕으로 둔 신적이고 형이상학적 진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진리와는 다르지만 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미적 진리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바움가르텐에 따르면 미적 진리는 확실하지도 않고 충분하게 지각된 진리도 아니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무미건조한 논리적 진리와 다르게 미적 진리는 풍요로움, 카오스, 물질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라이프니츠의 영향으로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은 로 규정할 수 있고, 불완전성은 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미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바움가르텐 미학의 의의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감성적, 미적 인식이 합리적 인식을 매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했다. 즉, 미적 인식이 주관적이며 불완전성을 지니지만 합리적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과정에 편입시켰다는 점이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플라톤 이래로 부정적으로 묘사된 예술적 정서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하였다.

그의 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논리적, 합리적 진리로부터 독립된 미적 진리의 확보를 성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합리주의를 견고하게 하려는 바움가르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합리성에 대한 비판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었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이론을 미적 인식을 단순히 합리론적 인식의 수단으로만 바라보았다고 이해하는 것은 그를 제한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으로 인해 독자적인 감성의 논리를 체계화할 수 있다는 길을 터놓았다는 점, 즉 그가 미적 진리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을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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