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학(2)- 미의 주관화의 토대, 멘델스죤

모제스 멘델스죤

모제스 멘델스죤(1720-1786)은 영국의 경험론, 취미론에 영향을 받아 미학을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를 통해 대상 자체의 미적 성질보다 수용자의 감정에 근거해 미를 논의할 수 있게 된다.

멘델스죤의 사상적 배경

멘델스죤은 합리주의의 전통 속에서 영국의 경험론자, 1세대 취미론자로 불리는 샤프츠베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전통적 관점에서의 미(美)

서구 철학에서 미에 대한 논의는 그리스 철학부터 진행되어왔다. 취미론 이전까지의 논의들은 미적 대상의 객관적 기준에 따라 미를 판단했다.

어떠한 미적 기준이 있고 이것이 외적 대상에 구현되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존까지의 생각이었다. 건축에서 사용되는 황금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면 개인의 인격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정리하자면,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미적 감정이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객관적인 속성으로 보았다.

취미론

그런데, 취미론을 통해서 대상의 객관적 기준이 아닌 주관적 감정에 의해 미를 판별한다는 것이 점차 정립되기 시작한다.

경험론자들은 합리론자들과는 특히 감정(emotion)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도덕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중요성은 흄이 인식론적으로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감정에 근거해서 보편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샤프츠베리는 경험론적 전통 속에서 취미론의 선구자였다. 그는 인간에게 미를 판단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보았고, 이 관점은 취미론을 정립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모든 인간에게 미를 느끼는 능력(taste)이 있고, 미적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을 떠나 그러한 능력이 자극 받아 발휘되는 것이 미적 경험이라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미적, 예술적 영역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는데 상당하게 기여했다. 미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허구적인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프츠베리와 같은 초기 취미론자들의 주장들은 여전히 인간에게 미를 느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미의 객관적 기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취미론 1세대는 객관주의와 더불어 주관주의적 미적 기준을 인정하고 양자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멘델스죤은 샤프츠베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미학 이론에 있어 감정을 중점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합리주의

멘델스죤도 바움가르텐과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볼프 학파 속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멘델스죤도 마찬가지로 합리적 인식과 감성적 인식을 구분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대로 바움가르텐은 감성적 인식의 가치를 인정하였는데, 하지만 합리적 인식보다는 저급한 차원으로 바라보았다. 멘델스죤도 그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

멘델스죤도 미적 인식의 고유성과 가치가 있다는 점을 긍정하는 것까지 동일하나 미의 주관성을 긍정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바움가르텐과 멘델스죤의 미학에 나타난 차이는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바움가르텐은 미를 인식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하지만 멘델스죤은 미의 인식론적 측면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멘델스죤은 오로지 미의 정서적 요소, 미적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멘델스죤은 우리의 감각적 지각이 통일성과 조화를 이뤄 충만함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적 인식의 기준이 우리의 인식 상태와 능력에 기반한다는 것을, 즉 주관화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적 대상의 적절성

멘델스죤은 영국 경험론자 버크의 영향을 받아 미적 대상의 적절성에 대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그는 인간을 기준으로 너무 작으면 볼 수 없고, 반면에 너무 크면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낀다고 보았다. 그래서 미적 대상이 적절한 크기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미의 논의는 인간을 초월한 객관적인 기준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러한 기준은 미를 인간중심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무관심적 쾌감 (Disinterested pleasure)

전통적으로 미학에서는 완전함과 미를 일치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황금비에 부합하는 것은 대상의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중세까지도 자연은 신이 창조하였기에 완전하고 아름다웠다고 생각했고, 라이프니츠도 예정조화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신이 만든 세계 중 가장 완벽한 세계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가 완전한 것이고 진리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았다고 할 수 있다.

멘델스죤은 미와 완전성을 구분한다. 미는 완전함과 다른 차원의 영역에 있다. 기능적인 완전함은 아름다움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즉 그에게 있어 미적 능력은 조화에 따른 충만함이 미를 보증하는 것이다. 즉, 미는 반드시 즐거움이 필요하다. 쾌감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이 멘델스죤이 주장한 미적 판단의 핵심이다.

멘델스죤이 말한 감각의 즐거움은 저차원적인 즐거움에 토대를 둔 것으로, 나아가 정신적 즐거움을 포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진리를 관조할 때 최고로 행복하다”와 동일한 수준의 즐거움은 아니다.

멘델스죤은 더 나아가 미적능력을 찬동능력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합리적 판단에 따라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떠한 감정 중 하나를 공감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누군가 미적 감정을 느낀 대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찬동능력을 갖고 아름답다고 느끼면 그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범위가 확장됨과 동시에 철저히 인간의 감정에 맞춰 미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범위의 확장은 미를 느끼는 능력이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적용되고, 폭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예술 영역에 한정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예술은 어떠한 법칙이나 규율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근거를 얻는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덕의 세계와 미의 영역이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은 도덕적 기준 내지 인식론적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부도덕한 행위도 예술의 소재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도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비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표출된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그리스에도 도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문화였고, 비도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공연도 행해졌다. 멘델스죤은 이를 근거로 예술은 도덕으로부터 독립되어있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후에 칸트가 이를 이어받아 무관심성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고, 그가 인식의 측면에서 미적 감정을 바라보지 않는 태도도 멘델스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 교육적 함의

또한 멘델스죤은 예술이 인간성의 쇄신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예술적 감성은 인간의 참된 본성에 가까우며, 인간의 완전성은 참된 미에 대한 섬세하고 세련된 감각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미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 교육의 중요성은 쉴러에게로 이어진다.

멘델스죤의 미학사적 의의

바움가르텐이 미학의 형식과 체계를 구축하는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면, 멘델스죤은 미학의 내용적인 부분에 있어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아직 근대 미학의 태동적 시기에 속하기 때문에 미학은 아직 합리주의적 전통 속에서 독립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멘델스죤은 미학을 심리학적으로 정초하여 자율성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더불어 예술의 교육적 의미와 실천적 의미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